월급이 올랐는데 왜 통장은 늘 비어있을까 4가지 심리 함정

월급 오른 달에 통장 잔고 확인해본 적 있으세요?

저는 있어요. 연봉이 300만 원 올랐던 해였는데, 12월 되니까 잔고가 전년이랑 똑같았어요. 아니 오히려 더 적었어요. 분명히 더 벌었는데 더 없는 거예요.

그때 처음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왜 이럴까, 의지가 없는 건가, 계획을 못 세우는 건가.

근데 알고 보니 이건 저만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행동경제학에서 이 현상에 이름을 붙였을 정도로 흔한 일입니다. 생활수준 상승 효과, 영어로는 라이프스타일 인플레이션이라고 해요.

왜 수입이 늘어도 저축은 그대로일까

통계청 가계금융조사를 보면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의 저축률 차이가 생각보다 크지 않습니다. 더 버는 사람이 더 많이 저축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수입이 늘면 지출도 같이 늘거든요. 자동으로요. 의식하지 않아도요.

더 무서운 건 이게 한 번에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커피 한 잔, 점심값 조금, 구독 서비스 하나. 하나하나는 별거 아닌데 합치면 월급 인상분을 훌쩍 넘어버립니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걸 4가지 심리 편향으로 설명합니다.

저축을 자동으로 갉아먹는 4가지 심리 함정

1. 쾌락 적응: 더 좋은 것에 금방 익숙해진다

월급이 오르면 처음엔 기쁩니다. 근데 그 기쁨은 생각보다 빨리 사라져요.

한 달 지나면 새 월급이 당연해집니다. 두 달 지나면 예전 월급으로는 살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이게 쾌락 적응입니다.

더 좋은 환경에 금방 익숙해지는 뇌의 특성 때문에, 월급이 올라도 만족감은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 만족감을 다시 채우려고 지출을 늘립니다.

커피가 아메리카노에서 라떼로, 점심이 편의점에서 식당으로, 옷이 SPA 브랜드에서 조금 더 비싼 브랜드로. 하나하나는 작아 보이지만 합치면 월급 인상분을 훌쩍 넘어요.

실제로 한국소비자원 연구에 따르면 소득이 10% 오를 때 소비 지출은 평균 8.3%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저축으로 가는 건 1.7%뿐이에요.

2. 준거점 이동: 비교 대상이 바뀐다

월급이 오르면 어울리는 사람도 바뀝니다. 모임이 달라지고, 가는 곳이 달라지고, 비교하는 기준이 달라져요.

예전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느꼈던 것들이 새로운 준거점 앞에서 부족해 보이기 시작합니다.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은 소득이 늘어도 행복이 비례해서 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 준거점 이동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내가 올라가는 만큼 비교 대상도 같이 올라가거든요.

연봉 3,000만 원일 때는 5,000만 원이 목표였습니다. 5,000만 원이 되면 8,000만 원이 목표가 돼요. 준거점이 계속 앞으로 이동하는 겁니다. 그 과정에서 저축은 항상 나중 일이 됩니다.

3. 현재 편향: 저축은 나중에, 소비는 지금

월급이 들어오면 뇌는 바로 지금 쓸 수 있는 돈으로 인식합니다. 저축은 나중에 해도 되는 일처럼 느껴져요.

근데 나중은 잘 오지 않습니다. 이번 달도 쓰고 나면 남는 게 없고, 다음 달도 마찬가지예요.

행동경제학에서 이걸 현재 편향이라고 부릅니다. 미래의 이익보다 지금 당장의 만족을 훨씬 크게 느끼는 뇌의 특성입니다.

특히 월급 인상처럼 갑자기 가처분 소득이 늘어나는 순간에 현재 편향은 더 강하게 작동합니다. 생각지 못했던 돈이 생겼을 때 저축보다 소비 충동이 더 강해지는 건 이 때문입니다.

4. 심적 회계: 인상분은 다른 돈처럼 느껴진다

월급 인상분은 기존 월급과 심리적으로 다르게 분류됩니다. 원래 있던 돈은 아끼는데, 새로 생긴 돈은 써도 된다는 허용이 생기는 거예요.

이걸 심적 회계라고 합니다. 같은 돈인데 어떤 틀로 인식하느냐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는 현상입니다.

보너스를 받으면 평소보다 더 쉽게 쓰는 경험 있으시죠? 인상된 월급도 마찬가지예요. 추가 수입이라는 심적 계좌에 분류되면 지출 허용 범위가 자동으로 넓어집니다.

실제로 이렇게 무너진다: 사례 3가지

[H3] 연봉 4,200만 원에서 5,000만 원으로 오른 직장인

월급이 월 65만 원 늘었습니다. 저축을 30만 원 더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3개월 뒤 확인해보니 저축은 그대로였고 지출이 60만 원 늘어있었습니다. 구독 서비스 2개 추가, 점심값 상향, 주말 외식 빈도 증가가 이유였어요. 하나하나는 별거 아닌 것들이었지만 합치니까 월급 인상분을 다 먹었습니다.

프리랜서로 전환 후 수입이 두 배 된 30대

직장 다닐 때 저축률이 15%였습니다. 프리랜서로 전환하고 수입이 두 배가 됐는데, 1년 뒤 저축률은 12%로 오히려 줄었습니다.

사무실 임차, 장비 업그레이드, 네트워킹 비용, 업무용 구독 서비스. 수입이 늘면서 지출 항목도 같이 늘었어요. 더 버니까 더 써도 된다는 허용이 자연스럽게 생겼던 겁니다.

승진 후 차를 바꾼 40대

과장에서 차장으로 승진하면서 월급이 80만 원 올랐습니다. 그동안 타던 중형차를 SUV로 바꿨어요. 할부금이 월 55만 원 늘었습니다.

나머지 25만 원은 주유비와 보험료 인상으로 사라졌어요. 승진 기념으로 산 차가 월급 인상분 전부를 가져간 셈입니다. 저축은 전혀 늘지 않았어요.

월급 오를 때 저축을 지키는 방법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월급 들어오는 날 저축부터 자동이체로 빼놓는 거예요.

쓰고 남은 돈을 저축하려고 하면 남는 게 없습니다. 저축하고 남은 돈으로 사는 구조로 바꿔야 해요.

월급 인상분의 절반만 자동이체로 추가 저축하고, 나머지 절반은 쓰는 용도로 허용해주세요. 뇌가 새 월급에 적응하는 동안 저축 비율이 자동으로 늘어납니다.

처음부터 전부 저축하려고 하면 지속이 안 돼요. 절반만 잡아도 1년이면 꽤 모입니다.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순서입니다.

첫째, 월급 들어오는 날 자동이체 날짜로 맞춰두세요. 월급일 당일 또는 다음날로 설정하면 쓸 틈이 없습니다.

둘째, 인상분의 50%만 추가 저축으로 잡으세요. 100%를 저축하려고 하면 오래 못 갑니다.

셋째, 저축 계좌는 급여 통장과 다른 은행으로 분리하세요. 심적 회계를 활용해서 쓰기 어려운 돈으로 만드는 겁니다.

넷째, 3개월마다 지출 항목을 한 번씩 점검하세요. 쾌락 적응으로 늘어난 지출 항목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월급이 오를 때마다 지출도 같이 오르는 건 의지 문제가 아닙니다. 뇌가 그렇게 작동하도록 설계된 거예요. 그걸 알고 구조를 먼저 바꾸는 게 핵심입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