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쇼핑을 즐겨 하다 보면 어느새 현관 앞에 쌓이는 게 있습니다.
택배 박스입니다. 크고 작은 것들이 매주 두세 개씩 들어옵니다. 분리수거함에 넣기 전에 테이프 떼고, 납작하게 접고, 묶어서 내놓는 그 번거로운 과정을 반복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걸 그냥 퇴비에 쓰면 어떻게 될까?”
제가 직접 해보니, 택배 박스가 퇴비 재료로 이렇게 훌륭한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1. ‘갈색 자본’이 뭔지부터 이해하면 달라집니다
퇴비를 만들 때 재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질소가 풍부한 초록색 재료와, 탄소가 풍부한 갈색 재료입니다. 채소 껍질이나 커피 찌꺼기는 초록색 재료입니다. 마른 낙엽, 신문지, 그리고 골판지 박스는 갈색 재료입니다.
퇴비가 제대로 만들어지려면 이 두 가지가 균형을 이뤄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탄소 대 질소 비율이 25:1에서 30:1 사이일 때 미생물이 가장 활발하게 움직입니다. 갈색 재료가 부족하면 퇴비 더미가 질척해지고 냄새가 심해집니다.
문제는 갈색 재료를 구하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는 점입니다. 낙엽은 계절을 타고, 신문지는 요즘 집에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택배 박스는 계절 상관없이 꾸준히 집 안으로 들어옵니다. 사실상 무한 공급입니다.
2. 제가 직접 써보니 달라진 것들
처음에는 고민했지만, 방법 자체는 매우 단순했습니다.
박스를 잘게 찢거나 가위로 5cm 이하 크기로 자릅니다. 크기가 클수록 분해가 느리기 때문에 작게 자르는 게 핵심입니다. 이렇게 잘라낸 골판지 조각을 퇴비통 안에 음식물 쓰레기 층 위에 켜켜이 덮어줍니다.
바뀐 것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첫째, 퇴비통에서 냄새가 거의 나지 않게 됐습니다. 골판지가 수분을 흡수하고 공기 순환을 도와줘서 혐기성 발효 대신 호기성 발효가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냄새 문제로 퇴비화를 포기했던 분들에게 특히 권하고 싶은 방법입니다.
둘째, 퇴비 완성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습니다. 탄소와 질소 비율이 맞아떨어지니 미생물 활동이 활성화된 결과입니다.
3. 주의해야 할 박스와 그렇지 않은 박스
택배 박스라고 해서 모두 퇴비에 쓸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골판지 박스는 대부분 사용 가능합니다. 단, 반드시 테이프와 스테이플러 심을 먼저 제거해야 합니다. 테이프는 분해되지 않고 퇴비에 남습니다. 코팅된 박스, 즉 표면이 반질반질하거나 방수 처리된 박스는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코팅 성분이 분해 과정에서 토양에 남을 수 있습니다.
택배 박스 안에 들어있는 갈색 종이 완충재는 그대로 퇴비에 넣어도 됩니다. 오히려 이미 잘게 구겨진 상태라 따로 자를 필요도 없습니다.
4. 분리수거 비용과 시간을 동시에 아끼는 구조
이 방법의 진짜 매력은 이중 절약에 있습니다.
기존에는 박스를 분리수거함까지 들고 나가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비 오는 날 눅눅해진 박스를 처리하는 번거로움도 있었습니다. 퇴비 재료로 쓰면 박스 일부는 그 자리에서 바로 해결됩니다. 분리수거 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따로 구매해야 했던 갈색 탄소 재료 비용도 없어집니다.
원예용 탄소 자재나 피트모스를 구매하면 5리터 기준으로 3,000~6,000원입니다. 택배 박스는 공짜입니다. 그것도 매주 현관 앞까지 배달되는 공짜입니다.
마치며
쓰레기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씩 자원으로 보이기 시작하면, 집 안이 달리 보입니다.
택배 박스, 커피 찌꺼기, 채소 껍질. 따로 보면 그냥 버려지는 것들이지만, 퇴비통 안에서는 서로를 보완하며 진짜 흙이 됩니다. 돈을 쓰지 않고 자산이 만들어지는 과정입니다.
오늘 현관 앞에 택배 박스가 하나 있다면, 분리수거함으로 가기 전에 잠깐 가위를 들어보시겠어요?